2018.07.02. 11:12
(취재) 이제 3세대로 대도약을 꿈꾸는 일본 통일교, 선교 60주년기념 2만명 희망전진 결의대회 성료.
단일종단으로 일본 두 번째 교단으로 성장
"오늘밤 기차로 내려가라.”
“선생님, 저는 못 갑니다. 무서워서 다시는 못 가요.”
“울지 마라, 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하늘의 명령이야.”
“선생님, 일본 경찰에 잡히면 저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다시는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일본의 해
(충남 갑사에서)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해야하는 내 마음은 더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죽어도 갈 수 없다는 그를 나는 사정없이 몰아붙였습니다.
문선명 총재(좌)와 함께 한 최봉춘 선교사(우)
하지만 최봉춘이 또다시 밀항에 실패해 오무라(大村) 수용소에 갇혀 한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국행 배를 타기 위해 시모노세키로 가는 기차에서 최봉춘은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을 했습니다. 일본경찰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시켰고, 그 틈을 타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3년의 각고 끝에 1958년 7월 최봉춘이 드디어 일본에 정착했습니다.(그로부터 1년 3개월만인 1959년 10월 2일 동경에 첫 교회가 설립됐다.) - 문선명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제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170페이지 -
대회전경
한편의 멋진 부흥회가 펼쳐졌다. 일본선교 60주년 하늘에 대한 감사와 공로자 격려 등의 취지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일본선교 60주년기념 ‘2018 신일본가정연합 희망전진 결의 2만명 대회’(실행위원장 도쿠노 에이지 일본회장)가 지난 7월 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경기장에서 창시자 한학자 총재, 문선진 세계회장 등 평화대사 식구 등이 운집한 가운데 성료됐다.
제1부 청평대역사
이날 행사는 제1부 청평 찬양역사와 1300명 연합합창단 메들리성가 등에 이어, 제2부 도쿠노 에이지 일본회장 대회사, 이시이 3세의 효정스피치, 문선진 세계회장 창시자 소개, 한학자 총재 특별 메시지 말씀, 방상일 부흥국장 억만세삼창 순으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도쿠노 에이지 일본가정연합회장 대회사
먼저 대회사에 임한 도쿠노 에이지 일본가정연합 회장은 “최봉춘 선교사의 일본상륙으로 시작된 일본선교가 어느덧 60만 신도로 성장한 것에 하늘 앞에 큰 감사를 드린다.”면서 “작년 11월 하나님 중심의 신일본가정연합으로 축복해 주신 한학자 총재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이 되도록 전진 또 전진하자”고 말했다.
한학자 총재 특별메시지
이어 문선진 세계회장의 소개로 등단한 한학자 총재는 특별메시지를 통해 “오늘 일본선교 60년 회갑 의미는 새로운 출발이다”며 의미를 부여한 후 “아직도 세계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불가능한 일들이 산재해 있다. 반드시 하나님을 가정에서부터 모셔야 문제해결의 답이 나온다. 남북통일도, 한일터널 통한 한일문제도, 한미일 중심한 동북아 평화실현도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전진하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아래 특별메시지 전문 참조)
3천명 아버지합창단의 감동의 합창
이어 나고야 Pure Water Youth ‘전통의 기수’ 퍼포먼스, 제1지구 청년학생들의 ‘무조건’ 댄스, 제1지구 3천명 아버지합창단의 ‘뜻의 응원가’ 등이 장엄하게 펼쳐져 식구들의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3세 효정스피치
이날 대회에서는 효정스피치, 꽃다발 증정, 청년학생 댄스 등 주요 프로그램이 통일가 3세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일본 통일교가 이제 2세대를 넘어 3세대까지 하나되어 미래를 강고히 개척해 나가자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문선진 세계회장의 창시자 소개 "어머니는 저의 영웅입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7년 전인 1958년 일본에 상륙한 통일교는 선교 60년 동안 일본 내 60만 신도로 일본 단일종단으로 두 번째 규모에 해당하는 기성종단으로 발전했다. 이는 외래 종교 유입을 결코 허락지 않을 만큼 8,90년대 강제납치 개종 등 수많은 반대와 핍박 속에서, 그것도 한국사회에서 이단(?)시 된 통일교의 일본선교 성공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래의 희망, 젊은이들의 역동 퍼포먼스
평소 통일교의 해외선교를 관심있게 지켜본 종교연구가 모 인사는 “일본 내 통일교 선교 성공비결은 기성 종단들이 일본에서 일방적으로 자기교리를 심기에 급급했던 것과는 달리, 통일교는 무엇보다도 다종교 신앙을 견지하는 일본정서를 존중하면서 확고한 대중적 확산을 시도했던 전략의 성공으로 본다. 특히 거기에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특별한 영적인 힘이 함께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억만세 삼창
일본 통일교는 금번 선교 6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미래 3세대 선교와 함께 또다른 질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
2018년 7월 1일
피스 전망대
축승회에서 한학자 총재
* 참고 1, 한학자 총재 특별 메시지 전문
존경하는 내외귀빈 각계지도자 정계를 대표한 의원님들 평화대사 그리고 선교 60주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인 가정연합 축복가정 회원여러분 반갑습니다(박수)
오늘 가정연합은 인생에 있어서 60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롭게 도약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박수)
오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난문제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어제 일본에 오면서 동경에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1970년대에는 동경은 공해가 심한 도시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공해가 없는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박수)
그렇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생긴 공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물론이고 지구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전 세계 인류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야 됩니다. 오늘에 세계에 있어서 한 나라가 잘한다고 하여 주변의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상태일때는 결과적으로 전체가 피혜를 입게 됩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하면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자유로운 평화세계를 언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아닙니다. 우주의 주인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 주인을 바로 알아 그 주인의 뜻에 맞게 사는 인류가 되어야만 평화세계를 가능한 것입니다 (박수)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셨습니다. 식물계 동물계 인간의 조상이 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장기간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 시간동안에 인간은 아름답게 잘 성장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도중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간이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타락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뜻을 기필코 완성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스럽고 고통스러운 인류 구원이라는 탕감복귀섭리역사를 이끌어 나오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선민을 세워서 잘못된 것을 개인에서 부터 나라의 형태가 이뤄질때까지 탕감복귀섭리역사를 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그 역사를 알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기다려야만 하는 기간이었나는 생각하게 될때 타락한 세계에 내 아들이다 할 수 있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기까지 4천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흘렀습니다. 4천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탄생시킨 마리아, 유대교,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본질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그렇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를 통해서 많은 엄청난 탕감을 치뤘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 시며 다시오마 했습니다 만약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어서 예수님께서 참부모 의 자리에 나아가셨더라면 로마제국을 통해 그때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역사입니까?
예수님 십자가 후에 성령의 부활로 사도들에 의해서 기독교문화가 출발됩니다. 이태리 반도를 중심해서 유럽대륙 섬나라 영국까지 가기까지는 천여년이 지났습니다. 영국을 중심한 기독교 문화로 대서양 문명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세계로 나갔습니다. 영국은 해질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도 또한 예수님의 본질을 몰랐습니다. 위하는 참사랑이 아닌 이기주의 자국의 이익을 생각하다보니 결국은 빼앗아오는 문명이 되어버 렸습니다.
하늘은 책임못한 인간이나 그 나라를 다시 들어서 쓰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때 찾지 못했던 예수님께서 다시오마 하셨고 다시와서는 어린양 잔치를 한다고 하였으니 2천년 기독교문화는 어린양잔치를 할 수 있는 신부 독생녀를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아시아에 한국, 한반도를 통해서 2천년동안 길러나오셨습니다. 준비해 나오셨습니다. 그리하여 1943년에 독생녀가 탄생했습니다 (박수)
1945년에 한국이 해방됐습니다. 남북이 갈렸습니다. 민주와 공산으로 갈렸습니다. 그때 나는 이북이 고향입니다. 많은 신령한 기독교 집단에서는 재림메시아는 평양을 통해서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남하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와세다에서 공부를 했던 내 외삼촌이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남한에 군대에 들어갔다는 정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3모녀가 내려오게 됐습니다.
내가 이 말을 왜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창조원칙이 인간에게는 시간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2천년만에 찾은 독생녀가 애기로서는 섭리를 이끌수가 없습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안전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나를 위해서 남하하게 했어요. 남하한지 2년후에 625 동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남한은 이북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렇 게 세계에 알려져 있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엔의 16개국이 한국동란에 참전하여 선한피를 흘렸을까요? 내가 설명을 안하더라도 하늘이 나에게 성장기간을 주셔야 하기 떄문에 내가 성인이 될때까지 나를 보호하셔야만 합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예)
나는 때를 알기 때문에 내가 결심하여 1960년 참부모자리에 나아갔습니다. (박수) 타락한 인류는 잘 믿는다고 하여 하나님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잘못된 혈통을 바꿔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해주실 분이 인류의 참부모 이십니다. (박수)
그렇기 때문에 가정연합은 축복이상, 축복가정을 깊이 찬양합니다. (박수) 축복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축복가정들은 종족메시아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박수) 이들이 나라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될때 그렇게도 인류가 소원하는 평화세계를 부모님을 중심한 인류한가족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박수)
내가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인류 문명사로본 하늘섭리의 종착점은 언제였을까?' 내가 지금 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나?' 먼저도 말했습니다만 한 사람 한나라가 잘한다고 하여 평화세계가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모두다 같이 잘해야 됩니다.
지금 처 한 한국의 남북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인간중심이어서는 완전한 통일은 요원합니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떄문에 그렇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현재 자기 중심한 생각을 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종족 나라 세계에 본래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길밖에는 답이 없습니다.(박수)
나는 한국동란 60주년이 되는해에 아직도 생존하는 16개국에 참전용사들에게 리틀엔젤스를 통해서 위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한국을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을 사랑한다 했습니다. 이렇게 진실은 통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잘못했음을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잘해보자 하고 손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안그렇습니까? (박수)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늘섭리를 놓고 참부모는 일본을 세계를 위하여 사는 해와국 어머니의 나라로 축복했습니다. (박수)
어머니의 특징은 자기를 돌보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수) 그래서 나는 한국과 일본과 세계를 대표한 미국 이 3개국을 중심하고 아시아 태평양문명권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효정의 심정문화혁명의 기치를 들고 당당하게 우리의 2세 3세들이 세계로 나아가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박수)
아까 사회자가 미국에서 350명 청년들이 왔다고 광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모릅니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연합은 가정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 되는 2세 3세들은 부모의 뜻을 따라서 하늘부모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천일국의 용사로서 용병으로서 세계를 위해 살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박수)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지금 이 지구성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들리는 뉴스는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하고 참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재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가만 보고 현재만 만족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세계노벨상을 수상한 많은 과학자들을 통원해서 지금 현재 당면하고 있는 잘못된 것을 수습하고 희망적인 미래의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구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연구를 시키고 있습니다 (박수)
오래전부터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세계평화고속도로, 이것도 참부모가 제창했습니다. (박수) 지금은 실질적으로 나는 그것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박수)
특히 섬나라는 대륙을 그리워합니다. 그렇습니까? (박수) 그래서 나는 한일해저터널을 일본과 한국이 하나되어서 만들고 남북이 하나된 자리에서 유라시아를 거쳐서 전세계로 향할 수 있는 평화고속도로를 만들고 싶습니다.(박수)
이미 아프리카 대륙에는 희망봉에서부터 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남북미를 연결하는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부터 아시아 대륙까지 연결하여 한국으로 통하는 세계고속도로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박수)
그런 관점에서 볼때 일본은 한국가 하나되어야 되겠습니까? 안되야 되겠습니까? (박수) 내 말에 동의하는줄로 알겠습니다. (박수)
이 나라가 하늘부모님을 모신 신일본이 되게 될 때 그 위상은 세계를 품는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는 신일본이 되게될때 세계 모든 나라들이 자녀들로서 부모를 공경하게 되는 그날이 올 것입니까? 안올것입니까? (박수)
지금 현재 위정자들은 과거의 잘못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래의 더 큰 목표를 향해서 우리 다함께 가정연합과 더불어 UPF 청년연합 여성연합 모든 기관들이 세계평화를 위해서 전진하는 도약하는 이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박수)
* 참고 2,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일본어: さいたまスーパーアリーナ) 경기장 : 사이타마현 사이타마 시 주오 구에 위치한, 주식회사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가 관리, 운영하는 다목적 경기장이다. 2000년 10월 9일에는 4, 5층에 존 레넌 박물관이 설립됐다.
대한민국 가수로는 여자 아이돌 보아는 콘서트로 남자 아이돌 EXO는 팬미팅으로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참여하였다. 김재중도 2017년에 슈퍼 아레나에서 공연했다. 2017년 6월 12일에 헬로! 프로젝트소속가수 ℃-ute가 이곳에서 공연을 한뒤에 이곳에서 해산을 한다.
방탄소년단이 이곳에서 2017년 6월 20일에 콘서트를 하였다. 세븐틴 또한 2017년 7월 26일에 이곳에서 콘서트를 하였다. 2017년 10월 31일에 와타나베 마유가 AKB48 팀B 졸업공연을 갖었다.
* 참고 3, 문선명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목숨을 내놓더라도 갈 길은 간다. 170쪽 전문”
서대문형무소에서, 석 달 만에 무죄로 풀려나왔습니다. 석방되자마자 곧장 충청도 갑사로 향했습니다. 그때가 1955년이니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라 먹고 살기가 무척이나 힘들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힘들더라도 훗날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함께 모여 예배드릴 교회도 없는 처지지만 더 먼 앞으로의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정세를 놓고 봤을 때 일본을 무조건 원수로만 여기고 배척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나는 일본 선교활동 계획을 모두 준비한 뒤 갑사 뒷산으로 최봉춘을 불렀습니다. "너는 지금 당장 현해탄을 건너가야 한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그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하고 답하고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어디든지 가오리다...'란 성가를 부르며 호기롭게 산을 내려갔습니다. 일본에 가서 생활은 어떻게 하고, 선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최봉춘은 그렇게 담대한 사나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과 국교가 열리기 전이라 밀항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항은 나라 법을 어기는 일이었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모든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봉춘은 목숨을 내놓다시피 하고 밀항선에 올랐습니다. 그가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는 소식을 보내오기까지 다른 일은 일체 접어두고 골방에 들어앉아 기도 정성을 들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일본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돈 150만 원을 빚을 내어 충당했습니다. 밥을 굶는 식구들이 즐비한데도 큰 빚을 낼 정도로 일본 선교는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최봉춘은 일본에 닿자마자 체포되어 한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는 그를 다시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일본 경찰에 잡혀 되돌아왔습니다. 겁에 질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보니 그동안 그가 겪었을 온갖 고초가 모두 짐작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지독한 고문으로 부풀어 오른 이마에는 보라색 피멍이 얼룩얼룩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나가 머리통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 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습니다.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그의 얼굴은 심하게 씰룩거렸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온 거야 시시콜콜 말해 뭐하겠느냐. 어서 밥이나 먹어라"하며 그의 앞으로 뜨거운 김이 나는 국밥을 옮겨 놓아주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허기졌을 텐데도 최봉춘은 얼른 숟가락을 들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숟가락을 들어 국에 밥을 말아주었습니다."어서 먹어라.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정말 마음이 아프구나" 하며 수저에 밥을 떠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최봉춘이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그의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일본 경찰의 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그가 겨우 밥을 넘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지옥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맛보는 따뜻한 밥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를 또다시 일본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 난 뒤, 최봉춘을 데리고 다시 갑사 뒤편에 올랐습니다. 소나무 숲에 이르자 말없이 굳어지는 내 얼굴을 보고 최봉춘은 겁에 질렸습니다. "너에게 뭐라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만 오늘 밤에 다시 여수로 내려가 배를 타라. 네가 일본 경찰한테 열 번을 잡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도 주어진 길은 갈 수밖에 없는 거야. 하루라도 헛되이 낭비할 수 없으니 오늘밤 기차로 내려가라." "선생님,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는 못 갑니다. 무서워서 다시는 못 가요."
최봉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겁에 질린 그의 웋음소리가 메아리로 번져 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울지 마라, 울음은 너를 약하게 만들 뿐이야. 너는 본래 무서움을 모르던 용감한 사내가 아니었느냐? 겁낼 거 없다. 밀선을 타는 건 너 혼자지만 그렇다고 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네 곁에는 내가 있고, 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라." 그러나 주저앉은 그는 도무지 일어설 줄 몰랐습니다.
내가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이미 힘이 풀려버린 그의 다리가 사정없이 휘청거렸습니다. "이 자식!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야? 정신을 똑바로 차려!" 어깨를 마구 흔들자 비로소 그의 눈에 빛이 돌아오는 듯했습니다. "얼른 가라! 이건 피할 수 없는 하늘의 명령이야." "못 갑니다, 선생님.절대로 못 갑니다." "가야 한다, 어서 가!" "선생님, 이번에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못 가겠습니다. 일본 경찰에게 또다시 잡히면 저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다시는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죽어도 세 번은 갈 수 없다는 그의 마음을 알고도 남았지만 나는 그를 사정없이 닦아세웠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가야하는 것이 그의 몫이듯 두려움에 떠는 그를 어떻게든 보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습니다. 나는 보내지 말아달라며 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이놈의 자식,사나이가 한번 맹세했으면 실천을 해야지. 죽더라도 일본에 가서 죽도록 해라!" 하며 소리를 냅다 질렀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몰아부쳐야 하는 내 마음이 더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를 보내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두운 밤에 몰래 배를 타고 현해탄의 거센 파도를 건너는 일을 세 번씩이나 시켜야 하는 내 마음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일본으로 선교를 반드시 가야 하는 때였습니다. 하늘의 때는 사람이 마음대로 미뤘다 당겼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엄중한 사실을 나도 알고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최봉춘은 또다시 여수에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재 밀항도 실패였습니다. 그는 오무라大村 수용소에 갇혀 다시금 한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밀입국자는 일주일 이내에 송환하는 것이 당시 일본의 법이었습니다. 한국행 배를 타기 위해 시모노세키로 가는 기차에 오른 최봉춘은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곡기를 끊자 몸에서 열이 났습니다. 일본경찰은 치료를 위해 본국송환을 미루고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고 그는 그 틈을 타서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생사를 건 3년의 각고 끝에 최봉춘이 일본에 정착한 것은 1958년, 우리나라와 일본은 정식 국교를 맺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압제 정치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일본과의 수교를 모두 거세게 반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원수의 나라 일본에 밀항을 보낸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을 거부하고 관계를 끊기보다는 일본을 교화시킨 뒤 주체적으로 그들을 끌어 안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의 위정자들과 통하는 길을 뚫어 일본을 업어야 하고, 또 어떻게든 미국과 연결 되어야 미래에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내다보았습니다. 최봉춘의 희생 덕분에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 성공한 후일 본교회는 구보끼 오사미久保木修己라는 뛰어난 청년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에 의해 확고히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밀항이 아니라 당당히 여권과 비자를 받아 보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를 나온 후 나를 잡아가두는 데 일조한 자유당 장관들에게 접촉해서 여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반대하던 자유당을 거꾸로 이용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너무도 먼 나라였습니다.
내가 그 먼 미국으로 선교사를 보낸다고 하니, 우선 한국에서 교회를 더 키운 후에 해도 늦지 않다며 다들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나라 미국의 위기를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며 식구들을 설득했습니다. 1959년 1월 이화여대에서 쫓겨난 김영운 교수가 처음 미국에 파송되었고, 그해 9월 김상철 선교사가 미국에 도착하여 전세계를 향한 선교 역사의 첫발을 시작하였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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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교신도대책위원회 원문보기▶ 글쓴이 : 익명회원 입니다
13:20
일본이 60만이면 한국은 600만명이네.
짐바브에가 1500만 국민중 800만명 복귀되고
브라질은 10만명 합동결혼식이라
한분 가시니 이렇게 발전한다고?
마더 만만세~~~
짐바브에가 1500만 국민중 800만명 복귀되고
브라질은 10만명 합동결혼식이라
한분 가시니 이렇게 발전한다고?
마더 만만세~~~
13:40
어머니의 특징은자기를 돌보지않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위의 말씀대로 무엇을어떻게 실천하고 계신지 식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18:40
하실 말씀이 허구헌날 그 말씀 뿐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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